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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재까지 북한을 방문한 중 가장 중요한 미국 문화 단체라 할 수 있는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이 평양에서 국영 TV와 라디오를 통해 라이브 연주를 한다. 많은 관찰자들은 이것이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 완화의 서곡이 아닐 지 조심스러운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진정 실직적인 해빙은 이 연주자들과 같은 방문객들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수 년에 걸쳐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켜오고 있었다.

백 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1990년대의 기아가 북한에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몰아오고 있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정부가 가하는 제약에 도전할 수 밖에 없었으며, 정부는 꾸준히 통제력의 상당부분을 잃어가고 있다.  
 
기아 이전의 북한은 "은자의 왕국"이란 명칭이 걸 맞는 나라였다. 주민들은 국영매체 외의 정보원을 갖지 못했으며, 거주지의 인근지역 밖으로 여행하는 것은 가족의 결혼이나 장례식이 있지 않은 한 금지되었었다. 국가 정보국은 주민들을 엄격하게 감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는 식량의 배급을 장악했는데 이는 북한의 주민들이 그들의 유일한 생계유지 방안을 잃는 것이 두려워 복종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들었었다.  
 
1990년대에 초반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몇 십 년에 걸친 정부의 농업 부문 관리부실, 수 년에 걸친 자연 재해, 그리고 구 소련과의 갑작스런 교역 종료는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본격적으로 악화된 기아로 진행시켰다. 식량 배급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2천만의 주민 중 최소한 100만 명이 기아로 사망했다.  
 
하지만 모두가 정부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랐던 것은 아니다. 수 백 만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상당 수의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팔고 짐을 챙겨 도시를 떠나 보다 손쉽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지방으로 이주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 중 대다수는 여행 허가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들조차 식량을 구하기 위해 떠돌아야 하는 상황에서 관료들은 광범위한 이주를 멈출 수 없었다. 북한 정부의 주민의 이동 제한은 사실상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수 많은 북한 주민들이 식량과 일자리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불법 이민자로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송환을 당했으나, 일부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그들이 새로 습득한 돈 버는 기술과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돌아왔다. 이 귀향자 들이 북한 정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북한 바깥 세상의 뉴스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북한 전역에 주요 식량 공급원으로, 이제는 실효성을 잃어버린 식량배급 체계를 대체하는 시장이 생성되었다. 초기의 시장은 절망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식량을 위해서는 값이 나가는 무엇이든 바꾸려고 했던 물물교환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시장은 곧 사람들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모든 것을 사고 팔려는 장소로 발달했다. 이제 북한은 수도인 평양과 그 밖의 지역까지 부산스런 시장으로 가득하다. 북한 주민들은 집에서 만든 국수의 판매부터 급행 버스의 운행, 부동산 개발까지 그것이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모든 종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다른 많은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원산 출신의 60세 여성이 진술했다, "지금 북한에서는 오직 돈을 버는 것만이 관심사입니다."  
 
또한 이윤 창출을 위해 시작된 일부 활동은 정보에 대한 더 많은 접근성을 이끌어 냈다. 예를 들면,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수입 CD 및 DVD 거래가 성황을 이룬 것이다. 수 년 에 걸친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시청을 통해, 이제 북한의 도시 거주자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더 부유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남한이 절망적으로 빈곤한 나라이며 그 수도인 서울은 매춘부와 걸인으로 가득하다고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북한이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물론, 새로워 지고 있는 북한이 모든 면에서 달라지고 있으며 장미 빛인 것은 아니다. 김정일 정부는 여전히 도전 불가능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화하고 있는 관리소를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국유 재산의 절도나 반사회주의적 행동 등의 위법에 대해 정기적으로 공개 처형을 실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진 관료들의 부패와 착복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가 기아 이전의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어떤 시도를 하든 많은 북한 주민들에게 기아로 인해 촉발된 이 변화는 이제 역행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인터뷰했던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는 더 큰 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북한의 반세기만의 최악의 재난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정보가 풍부하고 개방적이며 두려움이 없다. 바로 그들에게 북한 미래의 희망이 달려 있다.  

케이 석은 휴먼라이츠워치 북한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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